국정감사가 열릴 때 국회 본관에서는 답변자료를 준비하는 피감기관 공무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운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모습만으로는 공무원들이 전형적인 ‘을’로 보이나,  법보다 센 시행령을 만드는 행정부의 모습은 ‘갑’에 가깝다


사회문제 전문화·다원화 추세 입법 무게추 국회서 행정부로
행정 편의주의에 남용 늘지만 국회 전문성 떨어져 견제 못해


‘위임입법’ 견제 장치 유명무실
2010년 행정입법 보고 1187건중 국회의견 통보 16건…반영은 ‘0’
전문가들 “국회 권한 강화해야”


‘법 위의 시행령’ 문제는 결국 행정부에 의해 위협받는 국회의 입법권을 상징한다. 국가권력의 세 가지 작용인 입법·행정·사법의 권력분립이 무너지는 과정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가 국회의 견제를 피하며 정책을 펼쳐나가는 수단으로 시행령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국회가 법률의 구체적 내용을 정부에 맡기는 위임입법이 늘어난 상황 속에서 ‘법 위의 시행령’ 문제는 점점 늘고 있다.


■ 무기력한 국회
행정부에 의해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당하는 원인으로는 당사자인 국회의 무기력한 대응도 꼽힌다. 행정부 견제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도, 주요 사안에서 오히려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영유아 무상보육과 관련한 지원금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갈등을 벌이던 당시 야당은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해 국고보조율을 20%포인트 올리려고 시도했다. 이때 기획재정부가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보조금관리법의 시행령을 고쳐 국고보조율을 10%포인트만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아예 시행령을 명분으로 법률 제정을 막은 사례다. 민주당의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성명을 내어 “국회에서 여야 협의를 거쳐 의결해야 하는 법률이 아닌,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고보조율을 마음대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따지고 묻는 것으로 끝이었다.
 행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고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견제 장치로 국회법 98조가 있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훈령·예규·고시 등을 제정·개정 또는 폐지한 때에 행정부가 10일 이내에 이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국회의 행정입법 통보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는 국회가 제출받은 내용을 검토한 뒤 행정부에 ‘통보’하는 수준에 그친다.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 법제처가 2010년 11월 낸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보고서를 보면, 2009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행정부가 대통령령인 시행령과 총리령 등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면서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 보고한 건은 모두 1187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회가 행정부에 의견을 달아 통보한 건 16건에 그쳤고, 이를 실제로 행정부가 반영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이 절차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지 실질적인 규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행정부가 입법부?
지난 2010년 한국법제연구원이 법제처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 ‘행정관계 법령의 위임입법 심사기준 및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 위반 법령 발굴과 정비 방안 연구’를 보면, 행정형벌과 법규 등 5개 분야의 596개 법률을 검토한 결과 절반 수준인 245건의 시행령 등이 정비 대상으로 확인됐다. 같은 연구원이 2011년 낸 보고서 ‘신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행정규칙 정비 방안’에서는 교육·과학기술 분야, 국토·해양 분야, 보건·식품 분야, 지식경제 분야에서 시행규칙 78개가 상위 법률의 내용 및 위임 취지를 벗어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관료 차원의 행정편의주의도 문제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법제연구원 성승제 행정법제연구실장은 “예전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만들어지던 고시나 훈령을 법률로 많이 바꾸는 등 법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10여년 이상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법률을 운용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행정부가) 집행의 편의를 도모하며 (권한 남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4대강 사업에서 볼 수 있듯 정부의 위임입법 권한정권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할 여지가 크다. 시행령은 입법예고와 공청회, 법제처 심의,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등의 절차만 거쳐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홍완식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일수록 국회를 관여시키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갈등이 불거져도 행정부는 나름의 절차를 거쳐 만들었다는 이유로 시행령이나 훈령 등을 쉽사리 고치려 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피해자나 불만을 가진 이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헌법소원과 같은 사법적인 대응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다.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기까지는 숱한 세월이 걸리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 ‘법 위의 시행령’ 막으려면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행령 등을 통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은 전문화·복잡화·다원화된 한국 사회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고 해석한다. 영역별로 전문적이고 특수한 규율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입법의 무게추가 이미 국회에서 행정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와 3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수준까지는 용인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따라서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실질적인 견제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지성우 교수는 “국회 법제실이나 입법조사처 등 기존의 국회 지원기관의 역할을 강화해 국회의 행정입법 통보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한겨레 201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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