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총장님과 맺은 인연

2009.01.01 08:55

관리자 조회 수:6023

 1984년 봄 순천대학교에 법학과가 생기면서 나는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인 순천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은 법학과 곽종영 교수님과 친하셨던 허 교수님께서 가끔 곽교수님 연구실에 들리시는 과정에서 허 교수님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당시 알고 보니 허 교수님은 대학 선배님이시기도 하셨다. 그래서인지 내 신상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다. 순천대학교에서 첫 출발하는 후배교수인 나에게 틈나는 대로 격려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맺어진 좋은 인연은 그후로도 지속되었다.

 허교수님은 순천대학교 교수협의회 의장을 역임하신 후 1998년 여름에 실시한 총장선거에서 당선되어 1998년 10월 21일 순천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하셨다. 2002년 10월 20일로 퇴임하시기까지 정말 의욕적으로 순천대학교를 경영해주시었다. 고시원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귀중한 성과의 하나였다. 그 외에도 허총장님 재임중에 연구비 수주액 100억원을 돌파하는 쾌거도 있었다.

 고시원은 원래 부영건설 이중근 회장님께서 순천대학교에 장학금을 내시려던 것을 허총장님께서 말씀을 잘 드려 고시원 건물 신축으로 낙착된 것이었다.

 고시원 신축과 관련된 숨은 이야기들도 많다. 처음에는 현재의 고시원자리 옆 산 기슭 바로 옆에 순천여중 교사를 짓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고시원 주변환경이 순천여중에서 나오는 소음 때문에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순천대학교 경계선에 접한 순천여중 교사 예정지가 전남도교육청 소유지여서 어려움이 있었다. 순천대학교로 학제개편이 되기 전에는 순천농업고등학교 연습림이어서 문제가 없었으나 , 해당토지에 대한 소유주체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천대학교로 개편되어서 곤란하게 된 것이었다.

 여하튼 당시 총장이시던 허총장님께서는 이 문제를 푸셔야 했기 때문에 순천시와 교섭하여 순천여중 교사예정지중 순천대학교 경계선에 인접한 땅을 순천시가 매입하도록 하셨고, 허총장님께서는 당시 순천시의 어려운 현안 문제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러한 숱한 우여곡절 끝에 우정원이라 명명한 현 고시원은 이 중근 회장님께서 경영하는 부영건설에서 2000년 4월 1일 착공하여 12월 2일에 준공한 후 순천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여담이지만,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국 여러 곳에 필요한 건물을 지어 기증하는 부영건설 이중근 회장님의 경영철학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았다.

 이렇게 해서 문을 연 순천대학교 고시원은 초창기에는 당시 김준선 학생처장이 겸직하였고, 고시원 이용층을 사법고시 ․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관세사 ․변리사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으로 한정하여 출범하였다. 나는 법학과 교수회의 추천으로 사법고시반 첫 지도교수를 맡았다. 내가 생각하는 고시원 모습과 운영방향이 달라 당시 김준선 학생처장을 도와 부원장 역할을 하던 회계학과 박철우 교수에게 부탁하여 2001년 11월경 각 반 지도교수들이  한 시간 정도 허총장님을 면담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주로 내가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허총장님은 추진력도 있으시고 오기도 있으시다. 게다가 사람마다 특징이 있는 것이지만 , 허총장님은 성격이 좀(?) 급하시다. 말씀하시다가 허총장님 본인 생각과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곧바로 얼굴에 홍조를 띠시면서 허총장님 특유의 말투로 대응하신다. 그러나 뒤끝은 없으시다. 면담한 이 날도 내가 단단히 마음먹고 허총장님을 뵈었기에 평소 생각한 점을 기탄없이 다 말씀드렸다. 이 과정에서 허총장님 특유의 홍조를 얼굴에 띠시면서 내 이야기, 아니 공격성 발언(?)에 본인 생각을 말씀하셨다. 총장의 직위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는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는 발언내용과 수위였다. 면담을 끝마치고 총장실을 나서면서 < 총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국립대학이지만 초창기의 고시원에 학교당국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으면 합니다.>하고 말씀드렸다. 그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다. 2002년 2월 말에 일이 있어 나주 처가에 잠시 들렸는 데 총장부속실에서 전화가 왔다. 허총장님께서 3월부터 초대 고시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말씀을 하셨다.  내 생각에는 의외였다. 허총장님을 달리 보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좁은 분 같으면 마음 속에 꽁하셔 가지고 절대로 고시원장직을 제의하지 않으실 것인데....

이를 계기로 허총장님을 달리 보게 되었다. 역시 이러한 마음의 그릇을 지닌 분이라 순천대학교 총장을 마치신 후 농림부장관직도 잘 수행하신 후 현재 학술진흥재단 이사장으로서 특히 재정적으로 열악한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집중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허총장님과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는 허총장님의 동료교수로서, 대학후배로서 정말로 마음 흐뭇하다.

 올해에도 고시원 사법고시반에서 일차시험 합격자가 세 명이나 나왔고, 법원직과 검찰직 공무원이 매년 각각 6,7명씩 배출이 되고, 세무사도 여러 명 꾸준히 배출되고 있으니 허총장님께서도 흐뭇하실 일이다. 오늘의 고시원이 가능하게 한 단초를 제공해주신 허총장님께 동료교수로서, 후배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생각해보면 허총장님께서는 고시원에 투자를(?) 정말로 잘 하신 것 같다.
      ( 「禮山 허상만 박사와 함께한 즐거운 동행」,범우사,2008,79~82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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