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雜草)와 방하착(放下着)

2008.12.29 02:59

관리자 조회 수:5902 추천:1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집에서 가까운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조그만 밭 하나를 마련하게 되었다. 원래 나는 터밭에서 퇴비로 싱싱하게 자란 무우, 배추, 상추 등을 먹으면서 자란 농촌 출신인지라 땅에 대한 그리움이 구구 절절히 온 몸에 밴 사람이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밭에 들리면 밭 그 자체와 귀일되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자연은 사람이 하는 대로 응대해준다. 거기에는 복잡한 계산도, 꾸밈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받아줄 뿐이다. 그래서 자연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말 하지 않아도 복잡하고, 가슴이 응어리지거나 답답한 경우가 많다. 사람은 혼자만 편안하게 잘 살 수 없다. 그러나 혼자라도 요소요소에서 마음의 의지처를 생명에너지로 가득 찬 우주의 근본자리에 두고, 살아간다면 시나브로 세상 분위기가 부드럽고 밝은 쪽으로 개선되고, 나도 너도 잘 살게 될 것이다.

 가끔 밭에 가면 채소 아닌 잡초라는 온갖 풀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풀을 베어내면 곧 얼마 안 있어 원래 크기 이상으로 자라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제초제를 뿌리라고 권한다. 나는 전문 농사꾼도 아니고,  돈을 벌 목적으로 밭을 버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삭막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성을 느껴보고, 인간이 자연, 땅의 일부임을 체험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에 오염되지 않은, 생명에너지가 넘치는 먹거리를 조달하려는 주관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잡초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쓸모없는 풀에 불과하다. 그래서 없어져야 하고, 베어져야 하는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잡초도, 채소도 , 다른 농작물도 우리의 일부이다.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는 반갑지 않은,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잡초도 음양 관계 처럼 다른 유익한 풀, 채소와 공생한다는 점이다.

 의식의 지평선을 육체의 나에서 해방하여 대문을 활짝 열어버리면 온 천지가 나 아닌 것이 없다. 잡초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나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원하는 대로 말없이 준다. 그러나 사람은 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연을 함부로 대한다. 가슴이 아프다. 자연을 닮고 싶다.

자연에는 버릴 것이 없다. 천대받던 잡초에 약성이 발견되면 한 순간에 그 잡초는 귀한 풀이 될 것이다. 수시로 비교의 기준이 변하는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데다 우리의 마음을 붙인다면 우리 마음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항시 불안할 것이다.

 나무젓가락은 손톱깎기 보다는 길지만, 전봇대 옆에 서면 짧아지고, 이쑤시게 옆에 서면 길어진다. 본래 길고 짧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의 눈에 보이는 세상, 현상은 상대유한의 세계요, 현상이다.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것은 결국 다 변하고 마는 것이니까 항시 불안하고, 불편하고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참다운 주체성은 무엇인가? 

눈만 뜨고 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끝없이 생겨나는 집착을, 가짜 나를 놓아버려야 한다(放下着). 그러나 이게 어디 말처럼 ,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참 어렵다. 그래서 이 풀은 잡초다 아니다, 저 사람은 부자고, 저 사람은 중앙부처 국장이다 하고 상대유한적인 비교척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생활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구현하면서 수행의 끈을 간절한 마음으로 놓지 않아야 한다. 수행도 인간의 몸을 가진 내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있는 것이고,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났다는 사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소중한가! 

사람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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