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을 느끼며

2010.02.14 16:14

관리자 조회 수:7699

  오랜만에 밭에 갔다.

그동안 집사람이 몸이 편치 않아 오랫동안 밭에 가지를 못했다. 입춘(2/4)이 지나서 그런지 봄기운이 맴돈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도 겨울과는 완연히 다르다. 절기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미처 뿌리지 못한 보리씨를 밭에 뿌렸다. 감나무 옆 두둑에 시금치와 상추씨도 조금 뿌렸다.

 그리고 나서 밭을 한번 쭈욱 둘러보았다. 

신선하고 맑은 바람을 쐬일 수 있도록 감나무에 붙어 있는 오래된 껍질들을 벗겨주었다. 작년에 심은 석류나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 싶어 원줄기 아래 부분에 무성하게 자란 잔 가지들을 잘라주었다. 땅바닥에서 올라온 감나무 줄기를 정리해주었다.

 밭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천리향이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곧 터뜨릴 것 같다. 바로 옆에는  작년에 심은, 키다리 진달래 나무가 아직은 을씨년스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올 봄에는 더 보기 좋은 꽃을 피우라고 퇴비를 듬뿍 뿌려주었다. 살구 나무, 무늬버들, 대추나무, 포도나무, 석류나무 , 복숭아나무에도 봄에 아름다운 꽃과 잎이 필 수 있도록 뿌려주었다.

 바위 사이에 심어놓은 홍가시나무들도 살펴보았다. 나무뿌리 쪽 흙을 파보니 흙이 촉촉한데다 어떤 곳은 흙이 얼어있기도 하여 지지대만 점검해 주었다. 작년에 가지치기한 원줄기 옆으로 빨간 새싻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 순리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사람이 아무리 재주가 좋다한들 자연의 섭리를 흉내낼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 앞에 순간 경건해진다.  

 작년에 종려나무를 두 그루 심었는데 밭 아랫 쪽에 심어놓은 종려나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작년 말에는 겉 잎은 말랐어도 속 잎은 녹 색을 띤 채 싱싱했는 데 오늘 살펴보니 속 잎도 신통치 않다. 유심히 살펴보아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하나의 생명체를 보살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 속에 파묻혀 있다가도 흙냄새를 맡으면서 풀도 뽑고, 쇠스랑질을 하고, 흙을 파면서 이랑 고르는 일을 하노라면 실타래 처럼 얽혔던 생각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흙과 동일시된 나 아닌 나만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오래만에 밭에서 흙냄새를 맡고, 봄기운을 느끼니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다.
                                                  (2010.2.7.)

사람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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