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이 실추된 사회

2009.09.02 22:17

관리자 조회 수:7419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사적인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사법의 일반법인 민법에서 말하는 채권자는 일정한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채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 상대방을 채무자라 한다. 그런데 채권자는 채무자가 약속한 날짜에 부담하고 있는 채무를 이행해주리라고 믿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채권자는 채무자를 믿는 사람이다. 독일어에서 glaubig라는 형용사는 <~을(를) 믿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독일어로 채권자는 Glaeubiger라고 한다. 채무자를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로마가 제2차 카르타고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탈리아 반도를 훌쩍 뛰어 넘어 지중해를 내해로 하는 세계국가, 상업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농업국가 , 도시국가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로마의 상인과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등의 원거리에 있는 외지 상인과 거래하게 되면서 외상거래, 신용거래하는 상거래관행이 정착하게 된다. 서로 믿고 맡기는 신뢰가 없으면 외상거래, 신용거래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거래는 품질에 대한 신뢰, 대금결제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1997년 국제 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경제가 어려워진데다 설상가상으로 금년들어 세계경제까지 침체되게 되어 사회경제분위기가 밝지 못하다. 작금의 경제위기라는 와중에서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신뢰의 위기, 도덕성의 위기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미안해 할 줄도 모르고, 사과할 줄도 모른다. 채무를 지고 있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오히려 당당하다. 신뢰 시그널이 고장난 것이다. 참으로 걱정이다. 돈이 사람을 실수하게 만든다지만, 당사자인 채무자 입장에서는 지켜야 하고 ,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따로 있다. 보도에 따르면 개인파산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법원에서 이 제도의 운용을 엄격하게 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신문에도 난 적이 있다.

 자녀 교육문제로 서울에서 여러 집을 세얻어 살다보니 집주인들의 다양한 면면을 살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큰 애 학교 가까운 쪽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문을 닫으면 방음은 잘 되는 데 공기가 너무 탁하고 문을 열면 가까이에 올림픽대로가 있어 24시간 자동차 소음이 그치질 않아 옮기기로 하였다.  계약기간도 끝나서 집주인에게 전화로 말하였더니 바로 조치를 취하여 우리가 다른 집을 구해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해주었다. 새로 얻어 간 원룸은 주상복합건물이었는 데 원룸간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시끄러운 데다 바로 옆방에 사는 학생이 학생답지 않은 별난 짓을 해서 1년 살고 다시 옮겼다. 이 건물에는 상가를 관리하는 젊은 아주머니 과장이 있었는 데 이야기했더니 조금 뒤에 바로 통장에 전세보증금을 입금시켜주었다. 강남을 떠나 강북으로 옮겼다. 3월이 다소 지난 때여서 복덕방에 부탁을 해도 적당한 방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다세대 주택 한 칸이 비워있다고 해서 둘러보고 계약하기로 했다. 복덕방이 두 곳 이상이 관여되었다. 이른바 공동대리를 하는 형상이었다.  복덕방에 들려서 계약서를 쓰려고 하는 데 복덕방 남자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은 자기하고 J대 경영대학원 과정을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인데다 모든 걸 자기에게 일임했으니 믿고 자기하고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1억원 가까이 되는 전세보증금을 건네주는 것인데 공인중개사 말만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신문지상에 간간히 부동산거래 사고 기사를 본 적도 있고 해서.  내 신분을 밝히면서 <두 분은 친할지 모르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처지이고 금전거래는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니 주인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하였다. 한 참 뒤에 강남에 산다는 여자 집주인이 나타났다. 자기 집에 살 사람과 상견례도 하지 않고 찡찡한 표정으로 복덕방으로 들어와서는 볼 일만 보고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참 버릇없고 무례하였다. 서울에서 집얻기도 힘들고 , 얻는다 하더라도 집주인의 신용이나 매너를 정확히 알 길이 없기 때문에-서울에서는 재개발을 염두에 두거나 투기목적으로 집을 산 경우에는 집주인들이 내다 보지도 않고 집의 처분과 관리까지도 복덕방에 맡기는 게 관행인 것 같았다-마음이 항상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법대로 하면 된다지만, 이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경제적 ․시간적 손실은 무엇으로도 완벽하게 보상받기는 어렵다. 예방이 최선이고, 아예 그러한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게 현명하다.

 내가 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몇 십 년 전에 흔히 이야기 하던 <집없는(?) 설움>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계약기간 만료일이 가까워지자마자 바로 다른 집을 물색하기로 하였다. 지방에서는 적절한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복덕방을 둘러보면서 어렵사리 우리 여건에 맞는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입주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만 해서 계약기간이 끝난 이 집에서 나오기로 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았다. 얻을 만한 집 자체가 없었다. 지하철 역 하나 건너에 위치한 복덕방에 들렸더니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괜찮아서 계약을 하기로 했는 데 문제는 이 집이 팔렸는 데 계약금만 주고 받은 상태라고 한다. 복덕방에서 새 주인될 사람하고 계약 하라고 하는 데 중도금과 잔금이 제대로 치루어질 지도 모른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나 이 집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당시 집주인과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해달라고 복덕방에 부탁했으나 , 집주인이 마음에 걸리는 지 망설인다고 해서 집주인을 복덕방에서 설득하였다. 우리하고 임대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책임도 지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새로 이사할 집을 일단 계약을 하고 10일 뒤에 전세보증금을 건네주기로 하였다.

 J대 경영대학원과정을 나왔다는 남자 집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전번에 계약서를 작성한 S부동산업자가 내 친구이니 거기에 이야기 하세요라고 말하였다. 집을 보러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시간은 가고 해서 남자 집주인에게 독촉 전화를 했더니 돈이 없는 데 어쩔 거냐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그동안 집주인이 이리저리 거짓말을 너무 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바로 처리해드리지 못해서 송구하다든지 죄송하다든지 하는 말부터 하는 게 도리인데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참 뻔뻔스러웠다. 그래서 S부동산업자에게 집주인이 친한 친구라고 하니 말귀를 알아듣도록 이야기좀 잘 하라고 부탁하였다. 며칠 뒤에 남자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복덕방 친구에게 다 말해놓았으니 찾아가면 바로 처리해드릴 겁니다.>하였다.

여기 살던 집에서 가까운 곳에 다시 집을 구하였다. 1년 1개월 정도 뒤에 아파트 입주를 하기로 되어 있어서.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이사갈 집 구하는 문제나 전세보증금 반환문제로 더 이상 신경쓰고 고민할 일은 없을 것 같다.(200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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